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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기자의 피라미드를 오전 8시에 도착해 먼저 방문하고 11시쯤 고고학 박물관 투어를

하였으나 박물관 내용이 너무 커서 먼저 블로그 포스팅을 먼저 하고

피라미드 편을 올립니다.

이집트 고대 파라오에 대한 미스터리는 피라미드에 시작되어 그 궁금점을 해결할 수 있나

했지만 역시 해결 못하고 돌아온 파라미드 관람이었습니다.

 

먼저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의 배치 지도부터 올려 봅니다.

그래야 이해가 쉬울 것 같아서요.

하늘에서 수직으로 내려다본 지도를 보면 3개의 피라미드가 크기는 달라도 일정한 규칙성을 갖고

건축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동시대에 지어진 건축물이 아닌대도 말입니다.

           1. 피라미드 지역은 피라미드만 아니라 수많은 건축물로 지어진 복합 단지입니다. 사막에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만 우뚝 서있는 게 아닙니다.

           2. 세 개의 피라미드는 정확하게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건 무슨 의미일까요.

           3. 각 3개의 피라미드 아래쪽 동서 방향의 꼭짓점을 이으면 일직선이 됩니다. 정확한 측량 도구도 없었                 던 시기에 왜 이러한 통일성을 갖춰 건축했을까요. 건축시기가 다 다른데도.

           4. 후대로 갈수록 크기가 작아집니다. 재정적인 부담을 줄이려고 그랬을까요.

           5. 각 피라미드 장제전이 있던 계곡을 이으면 한 곳으로 모입니다. 이건 그곳에 나일강 운하의 부두가 

               있었다 합니다. 건축자재를 나르기 위해서라 이해됩니다.

우선 이런 의문과 주의 깊게 볼 사항을 마음에 새기고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관람에 나섭니다.

 

 

7시 30분에 호텔을 출발하여 8시쯤 매표소에 도착했는데도 많은 사람이 모였습니다.

10시쯤 왔다면 인파가 대단하겠지요.

 

견공 가족이 우리 일행을 먼 곳에서 왔다고 제일 먼저 반깁니다.

 

북쪽 사면에 도착해서 인지 역광으로 사진 찍기는 영 아니올시다입니다. 티켓매표소에 들어오면

이 북쪽사면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오는 분들은 오후에 오면 좀 더 좋은 사진을 건질 수

있으리라 봅니다.

 

제일 먼저 도착한 쿠푸왕의 피라미드에 대해 애기해 보겠습니다.

이 블로그를 쓰는 제일 큰 목적이 제가 몸을 마음대로 못 움직여 요양원에 있을 때 읽으려 하는 거니까.

지금의 기억을 충실히 남겨보려 합니다.

원래 피라미드는 이집트인들은 "메르"라고 불렀고 하늘로 올라간다는 뜻이랍니다.

피라미드는 그리스인들이 붙인 이름입니다.

이 피라미드의 주인은 쿠푸왕이라고 문헌에 처음 기록한 사람은 지어 진후 2000년 후의 그리스

역사학자 헤로도토스라 합니다. 그 시절 그곳 안내인한테서 듣고서, 그런데 19세기초 영국군인이

대피라미드 안 "무게 경감의 방' 벽화에서 쿠푸왕의 카르투시(타원형의 이름표)를 발견해

확인이 되었다 합니다.

 

쿠푸왕의 대피라미드 건립 인원은 10만 명이다 2만 명이다 4000명이다 등 의견이 분분한데

건립기간은 대개 20년으로 일치합니다. 10만 명은 헤르도투스가 들은 얘기로 노예 10만 명이 20년 동안

강제노동으로 세워졌다 하는데 현대 고고학자들은 4000명 정도 고용 인부가 농한기동안 

20년 동안에 걸쳐 완성했다고 합니다. 농한기 동안 농부들이 가족들과 같이 근처에 간이 숙소에

머물면서 임금을 받으며 일했다고 하는데 정설로 인정되는 것 같습니다.

하여튼 건축장비도 변변 찮은데 많은 희생은 있었겠지요.

 

 

피라미드는 견고한 석회암의 기반 위에 세워졌는데 미국 국회의사당이 건설 후 200년이 지나 5cm의 침하가

생겼는데 피라미드는 4500년이 지난 지금 1.5cm 밖에 침하가 일어났다 합니다.

완성당시 피라미드의 높이는 146.6m였는데 지금 꼭대기의 일부가 무너져 138.8m이고 각 밑변의 길이는

230.4m라 합니다. 경사각은 51도인데 당시 최고의 경사각이었다 합니다.

 

 

피라미드를 쌓은 돌은 작은 건 2톤에서 큰 건 20톤의 석회암인데 평균무게 2.5톤의 돌 230만 개를 경사로를

만들어 가며 210단으로 쌓았다 합니다. 석회암은 근처에서 캐낼 수 있는데 비교적 무른돌이라 사각으로

다듬는데 편해겠지요. 석회암의 단점은 수분에 쉽게 변화가 오는데 이곳이 비가 거의 오지 않는 사막지대라

4500년을 견디고 앞으로도 견딜 수 있겠지요. 동남아의 우림지대에 만약 이런 건축물을 세웠다면 1000년도 안가 무너졌으리라 봅니다.

 

 

그럼 피라미드는 전부 다루기 쉽고 비교적 가벼운 석회암으로만 이루어졌을까요.

현대의 건축가들은 석회암으로만 건축했으면 꼭짓점으로부터 내려 누르는 돌의 하중을 이기지 못해

무너졌으리라 합니다. 피라미드 내부의 방과 하중을 분산시키는 긴 복도와 천정에는

아스완에서 가져온 강한 화강암을 사용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합니다.

 

 

피라미드 출입구 쪽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점점 관람객이 많아지고 있네요.

저희 일행은 모두 연식이 있어 피라미드 내부에는 안 들어갔네요.

상당히 고된 탐방길인데 비해 내부에는 벽화도 별로 없고 유물도 없는 텅 빈 공간이라네요.

 

 

제 왼쪽 위로 원래의 피라미드 입구가 보이고 그 밑 사람 많이 모여있는 곳이 도굴꾼이 뚫은 출입구라는데

그곳을 이용해 관광객이 피라미드 내부로 들어갈 수 있다 합니다.

저는 그 앞까지 올라갔다가 그냥 내려왔습니다.

 

 

현지 가이드가 영어로 열심히 내부 구조에 대해 설명합니다.

물론 내부의 방들 안에 유물이 있었겠지만 전부 도굴되고, 현재 발견된 유물들은 전부 외부의 모래에 묻힌

장제전들에서 발견되었다 합니다. 도굴은 피라미드가 완성되자마자 고대인들에 의해

시작되었다지요. 그래서 고왕국 시대가 지나면 도굴을 피해 지하에 굴을 파서 파라오의 사후세계를

설계했는데 이것도 완성되자마자 공사한 인부들에 의해서 도굴이 됐다 하지요.

그래서 가장 보잘것없는 파라오였던 투탕카멘의 묘만 도굴이 안 돼 제일 유명한 묘가 된 것 같습니다.

 

 

세 개의 피라미드가 가장 잘 보인다는 전망대 언덕으로 왔습니다.

왼쪽부터 쿠푸왕. 제일 크게 보이는 피라미드는 쿠푸왕의 아들인 카프레왕의 피라미드.

좀 떨어져서 쿠푸왕의 손자인 멘카우레의 피라미드와 그 옆의 작은 피라미드는 그의 부인과 자식의

피라미드라 합니다.

 

 

역시 역광이라 사진은 오후에 와야 좋을 것 같네요.

 

모두들 사진 찍기 놀이를 하고 있어 저희도 해 봤습니다.

차량으로 스핑크스 앞의 장제전으로 이동을 합니다.

 

 

지금 이 공터는 야간의 피라미드 빛의 공연을 하는 장소인데 카프레왕의 피라미드 동쪽 사면이 보입니다.

스핑크스에 가까이 가려면 저 아랫사람들이 모여있는 장제전을 지나야 합니다.

 

 

스핑크스는 사자의 몸통과 인간의 머리를 가진 상상의 동물인데 파라오의 권위를 나타낸다지요.

파라오의 상징인 두건을 머리에 쓰고 있으니 카프레왕의 스핑크스 분명하네요.

스핑크스가 계곡 안에 들어앉아 있고 그 옆으로 카프레왕의 피라미드로 가는 길이 보입니다.

 

 

참 카프레왕의 피라미드에 고깔머리 부분에 대한 얘기가 빠졌네요. 카프레왕의 피라미드만 이 부분이

남아있어 유명한데 물론 다른 피라미드도 피라미드 전체가 다 저렇게 판판한 돌로 덮여 있었다 합니다. 

피라미드 겉 표면은 백색의 석회암을 채취해 표면을 덮고 반짝이게 갈아 햇빛에 번쩍이게 했답니다.

그런데 후대에 몹쓸 사람들이 최근까지 그걸 떼내어 자기네 성을 쌓을 때 쓰고 건축물로 사용했다 합니다.

 

 

스핑크스 앞의 장제전의 모습입니다. 석회암이 아닌 단단한 분홍섹 화강암으로 빈틈없이

쌓아 전혀 원형을 잃지 않고 4000년 넘게 견뎌 왔네요. 물론 모래 속에 파묻혀 몇 천년을

지내온 덕도 있지만.

 

 

이곳에서 카프레왕의 미라를 제작했다 합니다. 미라가 완성된 후 스핑크스 옆의 대로를 따라

피라미드에 안치시키려 행진했을 모습이 눈에 그려집니다.

 

 

장제전을 나와 스핑크스로 향하는 좁은 통로입니다.

 

 

계곡 안에 스핑크스가 웅크리고 앉아 있습니다.

1800년대 나폴레옹의 군대가 왔을 때는 목위로만 내놓고 나머지는 모래 속에 파묻혀 있었다지요.

그래도 전신을 드러 내놓고 있던 세월이 긴지, 커다란 석회암 바위를 깎아낸 스핑크스가 사막의 거센 풍화로

얼굴뿐 아니라 몸도 많이 상했습니다. 꼬리와 앞발만 성한채 남겨두고.

 

 

가까이  카프레왕의 모습을 한 스핑크스의 머리 부분을 당겨 봅니다.

코와 수염은 진즉 떨어져 없고 목 뒤도 다른 재질로 보수한 게 눈에 띕니다. 

 

 

등 부분에 보이는 피라미드는 쿠푸왕의 피라미드입니다. 세 피라미드의 장제전은 모두 동쪽 방향

한 곳 방향으로 있습니다. 그쪽에 나일강 운하 포구가 있었으니까요.

 

 

뒤 쪽의 풍화로 소실된 부분을 석회암 바위를 잘라 벽돌 쌓기 식으로 보수를 해 놨습니다.

눈에 거슬리게 저렇게 뿐이 안될까 고개를 젓게 합니다. 

 

 

 

스핑크스 발 앞의 부속 건물 잔해와 규모도 굉장해 옛적의 웅장함이 어떠했는지 상상해 봅니다.

 

 

 파라오에 대한 존경심과 충성심으로 그 시대를 살았던 민초들의 힘으로 이런 거대한

건축물이 가능했을까 계속 의문을 갖게 됩니다. 그것도 4500년 전의 시대에.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앉고 이집트 여행의 마지막인 알렉산드리아로 긴 버스 이동을 합니다.

 

 

이곳은 일정상 가보지 못했지만 다른 분은 꼭 가시라고 다른 곳에서 사진을 퍼 와 알렵드립니다.

바로 쿠푸왕의 피라미드 남쪽면에 있는 "태양선 박물관"입니다.

1954년 쿠푸왕 남쪽 사면 근처에서 지하에 나무조각들이 발견되어 확인하니 목선의 잔해였습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크던지 적던지 간에 사후 영혼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 영생의 세계에 간다고

믿어 배를 무덤안에 같이 매장했다고 합니다.

발견된 배는 길이 43.4m, 넓이 5.9m, 높이 7.9m로 무게가 45톤이나 가는 대형 선박입니다.

이 대형 선박을 14년에 걸쳐 조립 복원하고 1985년부터 쿠푸왕 피라미드 남쪽에 박물관을 지어 전시하고

있으니 꼭 방문하세요.